<생명(벽)>(1993)은 전통 청자의 현대화에 몰두한 김수정이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한 <생명> 연작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수정이 나무와 숲의 조형 표현과 메시지 전달 방식을 새로 시도한 것이다. 대지와 산을 의미하는 삼각형 도판의 바탕 위에 얇은 판을 하나씩 밀고 접어서 성형한 나무 형상들을 열 지어 배치했다. 이 나무들은 생기 나는 녹색이 아닌 하얀색의 유백유와 탄산동유의 보랏빛이 발색되어 숲의 활력이 떨어져 보인다. 또한 한 방향으로 시유하여 나타난 색감과 질감은 나무군락의 생기를 더욱 낮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수정은 개체가 아닌 군집을 제시하며, 지금까지 해왔던 생명의 환희와는 다소 다른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연의 순환에도 생과 사는 함께 있으며, 생기가 없는 나무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반어법적으로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