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분청을 대표하는 도예가 이수종이 2008년에 제작한 <철화분청호>이다. 이수종은 흙의 물성을 탐색하는 실험을 거쳐 1989년부터 전통 분청사기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후 철화분청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조형 언어의 골격을 이룬다. 분청과 철화의 표현성에 주력하기 위해 담담한 기형을 구축하는 작가는, 백토를 분장한 기형을 지지체 삼고 철화로 먹을 대신하여 분방한 필치로 거침없는 추상 이미지를 펼쳐 보인다. 태토가 희끗희끗 내비치는 회백색 분장토 위에 철화를 듬뿍 묻혀 짓뭉개듯 거칠게 내리그은 붓질에서 먹그림을 능가하는 생동감을 느낀다. 무심히 흘리고 흩뿌린 철화 위에는 강직하고 불규칙한 음각선이 중첩되어 이수종 특유의 깊이 있는 조형 세계를 선보인다. 넉넉한 형태에 넓은 구연을 가진 이 항아리는 화병으로 쓰거나 실내에 빈 채 두어도 두루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