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홍의 <합시리즈-8704>(1987)는 1980년대 중반에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까지 진행된 시리즈 중에서 초기작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0년대 초기 작업에서 즐겨 사용한 물레성형의 변형과 흙띠성형 방법을 벗어나 판성형으로 제작했다. <합시리즈-8704>는 커다란 점토판을 앞뒤로 맞대어 가장자리를 붙이고, 상부의 일부를 열어 놓은 형태이다. 판 성형으로 매끈해진 표면에 점토의 특성을 되살리기 위해 한길홍은 몇 가지 작업을 추가했다. 손으로 눌러 붙인 가장자리 앞뒤의 접합 부위를 불규칙하게 높이의 차이를 주어 마감했다. 여기에 부서지거나 갈라지는 질감을 가진 직관적이며 자유로운 형태의 작은 점토 조각을 추가로 붙였다. 그리고 점토판의 몸통 표면에 불규칙한 원형 도장으로 눌러 얕은 공간을 만든 다음, 백화장토로 메꿔 점토의 특성을 강조했다. 이 작품은 점토판의 뛰어난 물리적 성질인 유기적인 가소성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