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드물게 보이는 파초와 국화 무늬가 그려진 백자 항아리이다. 이러한 유형의 백자 항아리는 술을 담거나 꽃을 꽂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청화백자는 정해진 견양에 따라 제작되었으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파초 등 선비들이 선호하던 문양이 새롭게 나타나기도 한다. 문양은 분원(分院)에 파견된 왕실 화원이 그렸다. 이 항아리의 바닥에는 한글 고어(古語)로 '을사 자궁 이쌍'이라고 점각(點刻)되어 있어 1845년(헌종 11) 관요에서 제작되어 ‘자궁’에 바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궁’은 ‘慈宮’으로 추정되는데,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고 왕세손이 즉위하였을 때 그 죽은 왕세자의 빈(嬪) 또는 그가 거처하던 궁집을 가리키던 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