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요섭 장인이 유약을 씌우지 않고 제작한 <훈(악기)>(2012)이다. 훈(塤)은 점토로 빚어 아악에 쓰인 전통 관악기의 일종이다. 형태는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동근 저울추 모양이며, 한 손에 잡힐 만큼 작다. 훈은 고려 예종 11년(1116)에 중국에서 들여와 공자의 사당에서 지내는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에만 쓰던 특별한 악기이다. 기형 전면에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구워 만들며, 소리는 부드럽고 어두운 편이다. 훈은 백토를 황토에 섞고 백자 유약을 바르는 것이 보통이나, 이 작품은 철분이 많은 옹기토를 사용하여 붉은 태토 빛깔이 그대로 드러난다. 뾰족한 위쪽 끝에는 입을 대고 부는 취구(吹口)를 두고, 작은 구멍은 앞에 3개와 뒤에 2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뚫어 양손의 엄지와 검지, 장지를 번갈아 사용하여 구멍을 여닫으며 연주한다. 제한된 수의 구멍에서 12율을 내기 위해서 때로는 구멍의 절반을 막아서 음색을 변주한다. 배요섭은 본디 소금과 검댕을 입히는 푸레독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만년에는 품이 드는 푸레독 대신 소품을 제작하여 손을 풀곤 하였으며, 이 작품도 86세에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