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용의 <무제>(1994)는 초현실주의와 정물화 전통 구도와 화풍을 차용한 공예품이자 도화(陶畫)다. 실용 그릇으로 사용해도 무방하나, 작가는 대형 접시를 캔버스로 삼아 자신이 개발한 환원용 고화도 안료를 사용해 점묘하듯 실내 풍경을 점으로 찍어 표현했다. 보기에 평범한 정물화 같지만, 화면 속 화병에는 새의 발이 달려 있다. 테이블 위에도 생경한 사물들이 원근법과 상관없이 놓여 있다. 화병을 중심으로 창문, 테이블, 벽을 배치해 원형 접시를 세 면으로 분할했다. 작가는 서로 상관없는 물체를 같은 공간에 놓거나 우리의 상식과 상관없이 물체의 크기를 화면 곳곳에 응축, 전이하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데페이즈망 기법과 작가의 의식을 기이한 형태로 기묘함을 표출하는 초현실주의의 창작기법 ‘오토마티즘(Automatisme)’을 참조해 자신만의 화풍을 시도했다. 이처럼 이세용은 기존 존재하는 일상용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전통적인 생각을 뒤흔든 서구 현대 미술가들처럼 공예, 전통 등에 매이지 않고 자기표현과 독자적인 예술성을 추구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