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2004)는 2004년 파주 헤이리에서 열린《이세용 개인전 : 火, 花, 畵》을 위해 제작한 백자항아리다. 1990년대 유약과 화법의 실험을 거쳐 2000년대 이후 본인만의 유약, 번조, 회화 수법에 자신감을 느끼게 된 이세용은 본격적으로 기형과 전통 도자 기법의 현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조형적 시도를 했다. 고령 백토를 물레 성형한 후 조선백자 제기의 면치기 수법을 가져와 표면을 얼음 깎듯 흙살을 덜어가며 형태를 완성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절제로 오히려 꽃의 색채와 풍만함,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다. 별다른 채색 장식 없이 거침없이 도칼을 쓱쓱 그어 오직 흙의 물성을 극대화한 표현에서 절제미가 엿보인다. 그러나 늘 재미없는 것, 진부한 것을 못 견디는 이세용답게 항아리 좌우로 손잡이를 붙여 시각적 변화, 전통에서 한 걸음 나간 현대적 변용을 꾀했다. 덕분에 공예 사용자의 편의도 배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