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시대를 비추다
공예, 시대를 비추다
전시구분 | 상설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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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1.07.16 ~ |
전시장소 | 전시1동 2층 |
전시유형
공예역사
전시소재
나무와 칠, 도자, 금속, 종이
키워드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 비원자기, 조지아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화신백화점, 해시상회
전시1동 2층
1. 미술품제작소의 변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고미술품 감상과 컬렉션의 열풍은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다. 고대 미술품에 대한 동경으로 고대 청동기와 역대의 명품들을 소재로 한 ‘책가도’, ‘기명 절지도’ 등을 그렸다. 이를 모방한 재현 공예품도 유행하였고 공예가들에게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한성미술품제작소는 1913년 ‘이왕직미술품제작소’로 이름을 바꾸고, 이후 경영이 어져워져 1922년 도미타 기사쿠에게 매각되어 ‘주식회사 조선미술품제작소’ 체제로 1936년까지 운영되었다.
2. 근대의 공예가들
3‧1독립운동 이후 일제가 표방한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1922년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를 선두로 각종 전람회가 성행하였다. 전람회를 통해 작품을 홍보, 판매하는 체제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골동품 수집 열풍도 공예가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데 한몫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전성규, 김진갑, 강창규, 김봉룡 등 새로운 공예를 시도한 공예가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전통 공예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데 공헌하였다.
3. 경성의 공예 상점가
경성은 근대 공예품의 집산지이자 최대 소비지였다. 조선시대의 번화가인 종로 일대 시전에서 그 주변으로 범위가 크게 확장되어, 이 부근에는 소규모 상점(상회)에서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공예품 상점가가 있었다. 유통 구조가 근대화되어 전문적인 판매처가 생겼고 그 판매처가 기업화되어 장인을 고용하여 제작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등 산업 공예가 본격화되었다.
4. 공예에 담긴 근대
가옥 구조와 생활 양식의 변화로 편리함과 기능성을 강조하여 조립이나 탈부착, 휴대가 가능한 공예품도 생산되었다. 전문가가 생활용품을 디자인하는 서구식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었고 도안의 사용은 규격화된 공예품의 생산을 가능케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문화 말살 정책에 대응하여 전통을 수호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고유섭, 오세창, 전형필 등은 우리 공예를 지키기 위한 궤적을 남겼다.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등이 전개한 조선 미술의 연구와 민예론은 우리 미술에 깊은 화두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