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전시구분 | 상설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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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1.07.16 ~ |
전시장소 | 전시1동 2층 |
전시유형
공예역사
전시소재
나무와 칠, 뼈·뿔·조개껍데기, 도자, 섬유, 종이
키워드
왕실, 견양, 사대부, 일상, 장인
전시1동 2층
1. 장인이 새긴 왕실의 특별한 이름
조선시대에는 왕비•왕세자•왕세손 등을 책봉하거나 왕•왕비•세자•후궁 등에게 특별한 이름(존호나 시호)을 올릴 때 그 사실이 담긴 기록물, 즉 어책(御冊)이 제작되었다. 왕•왕비의 경우는 옥(玉)으로 제작되어 옥책(玉冊), 왕세자•후궁의 경우는 대나무로 만들어져 죽책(竹冊)이라고 했다. 어책은 그 시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남녀 장인들 100명 이상이 최고의 재료를 국가로부터 제공받아 재료의 가공부터 마지막 기물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제작하는 최고 수준의 왕실 공예품이기도 했다.
2. 견양(見樣), 왕실 공예의 표본
‘견양(見樣)’이란 국가 의례나 왕실 생활 물품 제작을 위해 규정된 치수와 특정한 양식을 그림이나 견본 등의 형태로 제시한 것으로서 제작되는 품목들의 일정 수준의 품질과 예술성을 담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조선은 예서나 의궤 등 국가 기록물에 다양한 물품들의 견양을 그림 형식으로 실었고, 경공장 등 장인은 이를 기본으로 하여 물품을 제작하였다.
3. 규방과 사대부들의 멋
유교가 일상을 지배하던 조선에서는 신분에 따라 집의 규모를 정하고, 가구·도자기·복식 등 다양한 소재의 공예 장식에 대해 규제를 했으며, 사치를 경계하였다. 사대부들은 여러 제한 속에서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주 안에서 드러나지 않게 은근한 멋을 추구했다. 그들은 집과 방의 크기, 각자의 취향을 반영해 다양한 물품들을 주문 제작해 사용했다. 민간에서는 견양에 맞게 만든 고급 왕실 기물들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따라 한 궁중 양식을 ‘궁양(宮樣)’이라고 한다. 조선 중후기에 들어와 왕실 공예를 의식하면서도 그 정형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목가구, 문방사우 등을 통해 궁궐 밖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과 이를 반영해 제작한 조선 장인의 솜씨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