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 Silhouette
고대 그리스의 한 여인은 떠나는 연인의 그림자를 벽에 비추어 윤곽선을 그렸다. 도공 부타데스(Butades)는 그 선에 흙을 눌러 얼굴을 남겼다. 그러나 남겨진 윤곽은 그가 누구였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기원을 짐작하고, 남겨진 흔적 위에 의미를 더한다. 전시 《실루엣》은 무엇이 가려지고 더해져 지금의 모습에 이르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백재원과 오세린은 금속, 흙, 콘크리트, 플라스틱 등 서로 다른 재료를 한 작업 안에 결합하며 사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백재원은 콘크리트 속에 금속 잔재를 묻고 표면을 깨뜨려 내부를 드러내거나, 금속 유닛을 반복적으로 연결해 일부가 가려진 윤곽을 만든다. 오세린은 쓰임을 잃은 사물과 자연의 흔적을 흙으로 빚은 형상 위에 덧붙이고 쌓아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낸다. 감추고 드러내는 행위와 덧붙이고 축적하는 행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물의 익숙한 인식을 흔들며, 보이지 않던 관계와 가능성을 드러낸다.
부타데스가 그림자의 윤곽에 흙을 눌러 얼굴을 남겼듯, 붙이고, 연결하고, 묻고, 깨는 행위는 결과에 이르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 과정은 작품의 표면에 변화의 흔적으로 남고, 시간을 쌓아 올리는 조형의 방법이 된다. 전시 《실루엣》은 완결된 형상 너머,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현재의 모습과 그 안에서 새롭게 읽히는 의미를 바라본다.
※ 서울공예박물관 ‘공예동행@쇼윈도’ 전시는 공예작가들로부터 콘텐츠를 직접 제안 받아 진행하는 시민소통 공예프로그램으로,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신당창작아케이드)의 젊은 공예작가들과 협력하여 진행합니다.
참여작가 오세린, 백재원